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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전 합참의장님! 회칠한 가면을 벗어세요.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13년 03월 17일 PM 11:33:34

김진호 전 합참의장님! 회칠한 가면을 벗어세요.

작년 12월5일 부산역 광장에서 국민행동본부가 주관하는 “노무현․김정일 역적모의 폭로 및 대화록 전문 공개촉구 국민대회”에 이색적인 연사가 등장했다. 서정갑 본부장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김진호 前 합참의장이 바로 그다. 그는 임동원 前 국정원장을 국가반역자로 고발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과연 임 전 원장을 “국가반역자로 고발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속담은 김 전 의장을 두고 말한 것 같다.

그는 연설서두에서 “오늘 저는 천안함 폭침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한반도평화포럼’의 공동대표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정부의 안보정책 고위 책임자로 근무할 당시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의 사상적 실체를 폭로하려고 합니다.”라며 임동원의 사상적 실체폭로에 목적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이어 “1998년 제가 합참의장으로 부임했을 때 임동원이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부임하여 이념적으로 본인과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부터 예기치 못한 이념적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라며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임 전 원장의 사상이 불순하고 행적이 반역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애국시민에게는 기초상식인데 같이 근무할 때는 굴종하다가 뒷북치는 소리는 왜 할까? 임씨는 노태우 정부 통일원 차관 재직 시 남북회담차 평양에 갔을 때 몰래 여동생을 만나고 나서 북한에 포섭되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로 인해 김대중의 아태재단 사무총장으로 발탁되어 지만원과 함께 아태재단에서 김대중 문하생들에게 통일교육을 맡아 온 사람이 아닌가? 김대중은 이적단체인 한민통의 의장이었고 광주 내란의 주모자로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는데 이런 전력도 모르고 “이념적으로 본인과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가?”

그는 연설에서 세 가지 사례를 들어 임씨를 비난했다.

첫 번째 비난은 그가 1998년 합참의장으로, 임동원이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근무 시 정책간담회에서 “북한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전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력 보강이므로 駐韓미군을 UN평화유지군으로 역할변경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것이다.

김씨는 임씨의 주장이 “주한미군의 무장을 해체시키는 PKO로의 역할변경 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논리”임을 알고 있었다. 합참의장은 MCM(Military Committee Meeting,한미군사위원회 회의)의 공동의장으로 SCM에서 합의한 양국간 주요 군사정책과 작전지침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한․미연합사령부에 하달하는 책임자이며, 현역의 최선임자인데 그는 임씨의 주장에 한․미군을 대변하여 반박하지 않았다. 이는 직무유기이며 굴종이다. 그리고 “PKO로의 역할변경은 주한미군의 무장해제”라는 인식은 무식한 논리의 비약이다.

두 번째 비난은 1998년 6월 북한의 잠수정이 동해안에 침투 후 북상하다 우리 어망에 걸려 좌초한 것을 우리 해군이 예인한 사건과 관련, “그때 청와대에서는 북한의 잠수정이 ‘훈련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을 가능성’ 등을 언론에 거론하며 대응을 자제하도록 군에 요구했었으나 우리 군은 영해침범으로 규정하고 잠수정을 나포, 예인했습니다. 이때 잠수정 내의 북한 승무원 9명이 모두 자폭을 했었습니다. 북한은 이를 두고 ‘훈련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한 잠수정을 남한군이 인도적 구조활동을 하지 않아 북한군이 희생 되었다’며 그들의 대남공작 활동을 우리에게 책임을 덮어씌웠습니다.” “원래 잠수정은 해저를 통해 은밀히 침투하는 공격용 무기입니다. 북한 잠수정이 우리의 영해에 침범한 ‘잠수정 침투사건’인데 북한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임동원의 思想의 배경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며 ‘훈련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임동원의 思想의 배경을 비난했다.

합참의장은 우리군 군령의 최고책임자이다. 잠수정이 어망에 걸려 좌초하고 승무원 9명이 모두 자폭을 했었으나 어부의 신고로 발견한 것은 경계실패이다. 작전실패는 용서할 수 있으나 경계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게 군율이다. 그런데 반성하는 말 한마디 없이 잠수정을 나포, 예인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나포란 불응시 무력으로 잡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좌초되어 모든 승무원이 자폭했는데 나포는 무슨 나포란 말인가? 이 역시 무식의 소치가 아니면 자기과시의 발로이다. “임씨가 대응을 자제하도록 군에 요구했다.”고 했는데 ‘대응자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 해군이 예인하러 오는 것을 우리 군이 거부하였다는 것인가? 합참의장이 보복을 하려했는데 임씨가 자제를 요구했기에 어쩔 수 없어 보복을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 역시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세 번째 비난은 1999년 6월15일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과 관련한 것이다. “1999년 6월6일 서해 NLL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꽃게잡이를 한다는 명분으로 NLL을 침범하기 시작한 북한의 경비정은 우리의 수차례에 걸친 경고조치에도 불구하고 10여 일간 연일 NLL을 침범하였습니다. 6월15일, NLL을 넘어오는 북한경비정의 배꼬리를 우리 해군이 뱃머리로 들이받아 뱃몸으로 밀어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우리 경비정에 선제포격을 가해왔고 이에 우리 해군이 즉각 응사, 적 경비정 1척을 격침시키고 어뢰정 1척을 반 침몰시키는 작전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던 통일부 장관 임동원이 합참의 서해 연평해전 작전경과 보고를 받으면서 ‘우리 군이 꼭 그렇게(대응사격으로 적 경비정을 침몰시킨 것)뿐이 할 수 없었는가? 라고 질책하는 투의 질문을 했었습니다.” 라며 “국가 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NSC 사무처장의 직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제정신인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비난했다.

김씨가 임씨를 이렇게 당당하게 비난할 자신이 있다면 그 때 김씨는 현역군의 최선임자로 어떻게 답변했는지를 알고 싶다. 답변한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굴종한 것으로 보인다. 굴종한 것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햇볕정책에 적극 동조하여 우리군의 적극적 작전을 방해해 왔다는 점이다.

제1차 연평해전과 관련하여 당시 2함대 사령관이었던 박정성 제독은 2008년 6월 25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햇볕정책 영향으로 군이 마냥 풀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내가 워낙 조이니까 주변에서 말이 많았죠. 장병들 사이에서 불만도 제기됐고. 당시 이남신 기무사령관이 부대로 나를 찾아와 ‘너무 조이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응수했죠. 그랬더니 ‘소신껏 하라’고 격려하고 돌아갔습니다.” 당시 NLL 침투 등 북측의 도발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작전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5단계로 진행됐다. 하지만 사격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NLL을 고수하되 절대로 선제사격은 하지 말라는 게 상부 지침이었다. 즉 어떠한 경우에든 적이 쏘기 전엔 먼저 쏠 수 없었다. 거기에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확전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 덧붙여졌다. 이에 대해 박 제독은 “상부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먼저 맞지 않으면 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이 같은 지침은 현장에서 작전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고 개탄했다.

6월9일 밤 북한함정 1척이 NLL 남방 13.7㎞까지 침범해 새로운 도발을 감행했다. 자신들이 1973년부터 주장해온 12NM 영해선의 기준인 해상경계선 꼭짓점에 어망 부이 7개를 묶은 뭉치를 설치한 것이다. “그 보고를 받는 순간 ‘이건 전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꽃게 도발이 아니라 NLL 무력화를 노린 의도적인 도발로 판단됐기 때문이죠. 즉각 상부에 보고해 ‘국지전 가능성이 높으니 육군과 공군의 지원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위에선 묵묵부답이더군요. 한 상급 지휘관으로부터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라’는 말도 들었죠.” 당시 작전 지휘계통은 2함대사령관-작전사령관-합참의장-국방부 장관-청와대였다. 보고나 지시가 단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電文) 형태로 통신망을 타고 모든 지휘라인에 동시에 전파되는 시스템이었다.

박 제독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 지시였다. 군에서 명령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지시는 간결하기는 해도 명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슬기롭게 싸워서 이기라는 건지, 슬기롭게 타협하라는 건지, 슬기롭게 피하라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지시였다.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사람은 육군 대장 출신인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었다. 박 제독은 조 장관과 하루에도 몇 차례나 통화하면서 작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조 장관은 박 제독의 상급 지휘관들에게 “박 제독에게 자꾸 전화해 괴롭히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연평해전이 끝난 후 해군은 합참에 교전수칙인 5단계 대응전략을 바꾸자고 건의했다. ‘밀어내기’라는 근접기동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차단기동을 하면서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일단 얻어맞고 싸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연평해전에서 먼저 공격을 당하고도 전사자가 안 나온 것은 전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해군 관계자의 말마따나 운이 따른 면도 있었다. 하지만 햇볕정책의 그늘 아래 군사논리가 정치논리에 눌린 탓인지 교전수칙은 바뀌지 않았다.

이상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씨가 햇볕정책의 충실한 하수인임을 알 수 있다.

박 제독은 김씨가 의장으로 있던 합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①“사격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NLL을 고수하되 절대로 선제사격은 하지 말라는 게 상부 지침이었다. 즉 어떠한 경우에든 적이 쏘기 전엔 먼저 쏠 수 없었다. 거기에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확전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 덧붙여졌다.” (이에 대해 김씨 직전 합참의장은 ‘적이 쏘기 전엔 먼저 쏠 수 없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확전을 하지 말라’는 지침에 대해 그러한 합참지침은 전에도 없었고 하달한 적이 없다고 했다.)

②한 상급 지휘관으로부터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라’는 말도 들었죠.” 당시 작전 지휘계통은 2함대사령관-해군작전사령관-합참의장-국방부장관-청와대였다. (여기서 한 상급 지휘관은 해군작전사령관과 합참의장 중 1명일 것임)

③박 제독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합참의 지시였다. 군에서 명령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지시는 간결하기는 해도 명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슬기롭게 싸워서 이기라는 건지, 슬기롭게 타협하라는 건지, 슬기롭게 피하라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지시였다. (이는 김씨의 지시로 보임)

④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사람은 육군 대장 출신인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었다. 박 제독은 조 장관과 하루에도 몇 차례나 통화하면서 작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조 장관은 박 제독의 상급 지휘관들에게 “박 제독에게 자꾸 전화해 괴롭히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박 제독에게 자꾸 전화해 괴롭히는 상급 지휘관들은 해군작전사령관과 합참의장 중 1명 또는 2명일 것임)

⑤연평해전이 끝난 후 해군은 합참에 교전수칙인 5단계 대응전략을 바꾸자고 건의했다. ‘밀어내기’라는 근접기동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차단기동을 하면서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일단 얻어맞고 싸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햇볕정책의 그늘 아래 군사논리가 정치논리에 눌린 탓인지 교전수칙은 바뀌지 않았다. (이는 김씨의 직무유기임)

사실 김씨같이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지향적인 군인도 드물 것이다. 우선 그가 대장으로 진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에서는 “지난 96년 10월 정기인사 때 전역하는 것이 통례인 군부사령관에 있으면서 대장(2군사령관)으로 진급하는 저력을 발휘했다.”라고 평하고 있으나 고려대 동문인 김현철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합참의장으로 발탁되었고 합참의장을 마치자 새천년민주당 안보특별위원장을 맡았으며 2001년 11월 11일 한국토지공사 사장에 취임한 것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6.15선언이 2000년 6월 15일에 있었으므로 햇볕정책의 반역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빌붙어 있었다. 2004년 6월 2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1년 11월 토지공사 사장 발령장을 받았다. 처음에 직원들이 상당히 긴장했다고 하더라. 군 출신 ‘낙하산’ 인사가 오니 싫기도 하고 걱정도 많았을 것이다.”라며 스스로 낙하산 인사라고 자인하고 있다.

김씨는 토지공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개성공단 시행자로 개성공단 사업에 깊숙이 참여했으며 이를 자랑하고 있다. 애국우익의 입장에서 보면 개성공단은 북한의 인질이며 대북 달러 퍼주기 창구인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조치에 오래전부터 경제제재가 포함되어 있고 개성공단 사업은 제외되고 있는데 이는 국제공조에 엇박자이다.

김씨는 작년 4월 총선때 민통당 동대문구 후보의 후원회장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렇게 좌파에 주파수를 맞추어 오던 자가 작년 12월5일 부산역 광장에서 좌파에 포문을 연 것은 그의 정치적 처세술로 보아 당선이 확실시 되는 박근혜 캠프에 던진 추파로도 보인다. 부산역 광장 연설을 두고 어느 예비역 대장은 “지가 기면서...”라는 반응을 보였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싸워온 우파들은 마이크를 잡을 기회조차 없는 반면 회칠한 자가 큰 소리 치는 기현상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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