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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친일파를 아는가?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05년 08월 06일 AM 10:01:49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는 다섯 가지 이슈의 첫 번째는 바로 친일문제입니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먼저가 되는 이슈인데, 이 친일문제가 민족 분열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가 아니라 오히려 80년대 들어서부터입니다.
해방된 직후에는 오히려 친일문제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3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제의 통치하에서 같이 살아온 입장에서 2천만 동포가 전부 동병상련의 심정이었고, 친일파라고 누구를 손가락질 하고 할 만큼 떳떳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때문이고, 또 직접 일제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일제의 통치가 얼마나 혹독했으며, 그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야만적이고 광폭했던 시대였는가를 몸소 체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설사 친일파라 해도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해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나도 그 심정, 그 입장을 안다''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상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욕할 염치나 자격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냥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악독한 친일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반민특위가 처벌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민특위가 애초의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악랄한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단죄가 어느 정도는 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친일파 척결과 일제시대의 청산이라는 것이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더욱 첨예하고 심각한 우리 민족 내부의 분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이제 다 죽고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광복동이가 지금 환갑입니다.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다 칠순 이상의 노인들입니다.
70대 이하는 일제시대를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모르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생각을 해서 ''친일파는 역적''이라는 단순도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후대들은 친일을 용서할 수 있는 체험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해방이 된 그 날에 매일 같이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기사를 실었던 조선일보 사옥이 민중들의 손에 불태워지지 않았으며, 왜 친일반민족신문인 조선, 동아의 경영자들이 일본으로 도망가지 않고 우리나라 땅에서 여전히 존경받는 지도급 인사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는지, 왜 귀국한 상해 임정의 요인들도 조선, 동아의 경영인들과 시국을 의논하고 나라를 함께 걱정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조선, 동아가 지면에 천황 일가의 사진을 싣고, 성전 완수를 촉구하는 기사를 싣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랬을망정 한글로 발행되는 조선인의 신문이 폐간되지 않고 나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하고 대견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선인은 조선, 동아의 기자들을 전부 애국자로 생각했었고, 그건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고,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지도 못하는 후대들이 당시 신문에 실렸던 단편적인 사진과 기사들에 흥분하고 선동된 나머지 세계 역사에 드물 정도의 민족적 자산인 두 신문사를 친일반민족지로 낙인을 찍고 독립기념관에 보존된 윤전기를 야만적으로 끄집어내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일은 지난 세월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고, 어떤 세력에 의한 음모의 일환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 드릴까요?
우리나라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이 교내에서 데모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무도 그런 일을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것이 91년 아니면 92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데모의 이유는 고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동상건립에 반대하는 데모였습니다.

김정렬 장군은 초대와 3대 공군참모총장이었고 해방 직후에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 그야말로 맨땅에서 조국의 공군을 건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625때 그분의 지휘 아래 우리 빨간 마후라들이 북한과 중공의 공군을 상대로 하늘에서 싸웠습니다.
창군 초기에 대한민국 국군의 초창기 멤버들은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그 인적자원의 토대는 공통적으로 3군데였습니다.
바로 구 일본군 출신, 아니면 만주군 출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복군 출신이 그것입니다.

김정렬 장군은 경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에 일본의 예과사관학교에 입학해서 그곳을 졸업하고, 1941년에 다시 일본 육군 항공사관학교에 들어가 전투기 파일럿이 된 사람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맥아더가 방어하는 필리핀을 공략할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서 싸운 실전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김정렬 장군이 처음에 공군을 만들 때도 그 인적 구성은 세군데 각기 다른 출신의 비행사들이 섞여있었습니다.
물론 수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역시 구 일본군 출신의 파일럿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구 일본군 출신 파일럿과 중국 국민당군 공군 출신인 파일럿들은 대륙의 하늘에서 서로 싸운 적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이들은 출신지를 불문하고 다 같은 한국의 군인으로서 일심협력하여 나라를 지켰지 누구도 너는 일본군 출신입네, 너는 광복군입네 편을 가르지도 않았고, 출신에 따른 파벌이 군내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구 일본군 장교였던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불평을 말한 비행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김정렬 장군은 모든 공군인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만약 당시에 일본군 출신이라서 배격하고, 천황한테 충성했다고 해서 내치고 그랬다면 공군이건 육군이건, 해군이건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인으로서 비행경험이 있고 조종간을 잡아본 인적자원을 총동원을 했는데도 공군은 경험 있는 비행사의 부족과 양성의 어려움에 늘 허덕거렸습니다.
이건 공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육군과 해군도 마찬가지였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공히 그랬고, 민간 기업과 학계, 언론계 역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친일을 가지고 사람을 가리다가는 건국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법은 있었습니다.
북한처럼 빨치산 출신, 홍군 출신들이 대거 입국해서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소련군과 같은 압도적인 대규모 군사력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포정치, 철권통치, 군사국가로 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착지는 모든 동구권의 국가들이 보여준바 그대로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북한처럼 됩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옳습니다.
설령 다소의 친일 경력이 있더라도 새 조국의 건설에 그들의 능력과 자질을 바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랬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조금도 모르는 90년대 초의 공군사관생도들이 이 나라의 공군을 만든 자기들의 아버지를 친일로 매도해서 교내에서 데모를 하는 패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제가 예로써 공군의 김정렬 장군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예가 비단 공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6.25전쟁 때 공산침략군과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장군들과 장교의 대부분이 일제 때 일본군 장교출신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고 이나마 잘살고, 자유로운 조국에서 숨쉬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군대만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정계, 재계, 학계, 종교계, 예술계 등 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그들 자신의 죄도 아니고, 그들 자신의 본의도 아니었던 일제시대의 경력 때문에 친일파로 낙인이 찍히고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아 그 명예는 더렵혀지고 그 공적은 깎이어 나갔습니다.
더욱 억울한 일은 그들이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전혀 모르는 아들과 딸들에게 그런 치욕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일제의 강점기간이 36년이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되던 해 태어났던 사람이 서른 여섯 살에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암만 피식민지 백성이라 해도 한 인간이 40대가 될 때까지 배우지도 않고, 일도 안 하고, 취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차별받고 멸시받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오기와 울분이 각계에서 더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일본인들과 경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신생독립국가들의 중추는 식민지 시절에 지배국가에 중용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간디, 네루, 막사이사이, 수카르노, 장개석, 이광요 등 공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나라도 과거의 경력을 가지고 건국의 주역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방 직후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모두가 합심단결해서 새 조국을 건설하는데 매진했던 것입니다.
반민특위가 하려고 했던 것은 그야말로 반인륜적이고, 빈민족적인 범죄자들의 처벌이었지 일제시대에 관직에 나가고, 장교가 되고, 신문기자를 하고, 법관을 하고 교수를 했다고 해서 단죄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무대의 뒤안길로 점차로 사라지게 되니까, 새삼스럽게도, 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들의 입에서 ''친일단죄론''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친일청산의 타겟은 반민족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같은 뛰어난 정치지도자들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민족 신문, 그리고 학계와 언론계, 경제계, 예술계, 문화계의 주류인사들이 친일이라는 신종 매카시즘의 칼날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종교계의 원로이자 민족의 지도자 중 한사람인 김수환 추기경까지도 일본군 장교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눈에도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통성과, 도덕적 권위,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에 흠집을 내고 상처를 입히자고 하는 목적이 드러나 보이는 친일청산론은 70년대부터 일부 학생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하다가 80년대에 들어와서 운동권이 당시의 권위적인 정권을 공격하는 주된 무기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김일성 집단과 좌경화된 학생조직들이 한국의 주류계층을 공격하여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아킬레스건으로 발견한 것이 이 친일문제입니다.

광복이 되고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문제가 민족을 분열시키는 으뜸가는 이슈로 부각되어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대중적인 선전과 선동이 교묘하고, 사안 자체가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 쉽다 보니 이제는 순수한 애국적인 동기에서 ''친일단죄론''에 합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는 누구보다도 국가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확신을 가져야 할 공군사관학교의 생도들까지 단지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유만으로 공군의 창설자를 존경할만한 선배로 삼기를 거부하고, 당대의 모든 사람이 민족의 정기를 지켜온 민족신문으로 인정하고 감사를 표했던 조선일보의 윤전기가 독립기념관에서 끌어내려지는 참담한 꼴을 목도하기기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실을 바로 말하고 사실을 엄격하게 전해야 하는 책임을 기성세대들이 소홀히 한 잘못이 크다고 저는 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때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로 해방 후에 건국에 참여하여 각계각층에서 나라를 이끌었던 건국세력 및 그들의 뒤를 이어받은 근대화 주도 세력과, 이들에 의한 건국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근대화의 가치를 폄하하면서 이 주도세력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집단 사이의 전면적인 승부라고 저는 봅니다.
어느 쪽이 승리하고 어느 쪽이 나라의 주도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체성과 국가관의 성격이 달라질 것으로 저는 예측합니다.
단순히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충돌이 아닌 것입니다.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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