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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워쳐(12)-참혹한 運命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06년 10월 11일 AM 10:11:01

- 피치못할 개인 사정에 의해 한 달간의 인터벌이 생긴데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늘 말씀드리는 대로 급변하는 시국에 일희일비 하다보니 어느 듯 한두 달이 지나간 듯 합니다.

戰統權 문제로 들썩이던 시국에 추석이랍시고 연휴를 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北核恐惶이 엄습, 더 한층 시국이 소용돌이치는군요.

오랜만에 귀가하여 다시 평상심을 찾아 이 북핵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도 약속대로 이 시리즈를 엮어 가렵니다..........


탈북 부녀자들의 人身賣買


휴대전화로 조직원들 간에 연락을 취하며 賣春상품 찾기에 혈안인 중국 내 국경도시 연변의 인신매매범 들은 탈북여성을 붙잡아 중국 농민이나 매춘가에 넘겨버린다.

이들은 완전 조직범죄자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탈북여성들은 돈벌이 아닌 것이 없다.

탈북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강을 건네준 다음에는 중국인에 팔아넘기거나 매춘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불행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불교단체가 작성한 믿을만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에서 도주한 여성들의 태반이 어떤 형태든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한다.

자식의 결혼을 부모가 결정하는 우리 조상 전래의 관습에 따라 굶주린 부모는 딸자식을 결혼상대에게 파는 경우가 있다.

굶주린 그들에게 인륜천륜 찾는다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다.


불과 3, 4년 전 이야기이지만, 延吉에서는 북한의 처녀는 나이나 용모 건강상태에 따라 8백에서 천2백 달러의 값이 매겨졌다.

국경통과 후에 심문받은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 이상이 고아라고 하며, 또 4명 중 1명이 중병을 앓는 부모를 두고 있고, 10명 중 4명 이상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어도 자식을 양육할 능력이 없었다.


아무런 신분증이나 서류도 없이 비합법적으로 끊임없는 위협에 노출된 채 발각되어 강제 송환될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그들은 싸구려 급료로 아무 권리도 없는 노동자가 되는 길 외 달리 방도가 없다.

중국정부는 문제를 축소하기 위해 탈북민을 약 1만 명으로 잡고, 유엔난민기구(UNHCR)는 약 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확실한 숫자를 들 수는 없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것만은 틀림없다. 대략 20만 명은 족할 것이다.


그러나 몇몇 NGO는 그 숫자를 더 많이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숫자를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숫자도 많다.

사람들은 양방향에서 국경을 넘고 그중에는 1년에 두세 번 북한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국경지대의 노동자들처럼 약이나 식량, 의복 그 밖의 위대한 指導者에게 일일이 감사할 필요 없이 숨쉴 수 있고, 생활이 곤궁하더라도 끊임없이 延命策을 찾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중국)의 솔깃한 뉴스를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북한-러시아간의 짧은 국경을 넘어 탈주하거나 중국영토를 경유해서 러시아로 들어간 난민들도 있다.

러시아 국민의 탈북민 맞이는 과히 달갑지 않다.

러시아에 사는 한인계 소수민족은 러시아化해서 언어문제도 있고 또 몹시 가난하기 때문이다.

통상 러시아는 탈북자들을 송환하지 않고 유엔 난민기구에 보냈다.


그러나 1999년 11월, 중국 경유로 러시아에 들어간 7명의 난민 케이스는 상당히 매스컴을 탔다.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분명치 않지만, 중국은 러시아에 대해 그들을 중국에 돌려보내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러시아는 그들을 서울로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나(비행기 좌석까지 예약했었다), 돌연 중국에 인도했고, 중국은 북한에 송환해버렸다.


불안정하다기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기독교 및 NGO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탈북자 중에는 희망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몽골이나 혹은 조금 먼 태국, 미얀마, 베트남 경유로 한국에 당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스크바까지 갔다가 온 사람도 있다.

이런 우회 탈북자 수는 극히 적지만 그 수는 확실히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0년부터 93년까지 그 수는 불과 10명이었다.

1994년에서 98년까지는 수십 명에 달했다.

그리고 1999년 이후는 수백 명으로 증가해 그 수는 매년 배증하고 있다.

1998년에는 70명, 1999년에는 148명, 2000년에는 312명, 2001년에는 583명의 탈북자들이 서울에 당도할 수 있었다.


검문검색이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1년간에는 천명 이상의 난민이 한국에 도착하였다.

한 가족 전원인 경우도 있고, 그것이 여성난민 증가와 결부된다.

90년대 중반에 5분의 1에 불과했던 여성 탈북민의 비율이 오늘날에는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1953년 7월의 휴전 이후 약 2천여 명이 따뜻한 남쪽에서 살게 되었으며, 그 반수가 넘는 탈북 2세 실향민들이 서울과 근교에서 살아가고 있다.


2002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탈북상황은 새로운 단계로 전개되었다.

북한에서 활동경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도주의자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을 위시한 인권활동가나 한국계 미국인 더글러스 신 등 기독교 목사들의 원조로 눈부신 조직활동이 전개된 적도 있었다.

2001년 6월 北京 유엔난민기구에 뛰어든 이후 백 명 가까운 북한 탈주민이 중국 주재 여러 외국 대표기관에 뛰어드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맨 처음은 스페인 대사관(2002.3.14)이고, 이어 瀋陽의 미국 영사관(2002.5.9), 캐나다 대사관(2002.5.11 및 6.9), 瀋陽의 일본 영사관(2002.5.8), 한국 외교사무소(2002.5.23 및 6.9 및 6.14.), 알바니아 대사관(2002.8.13) 그리고 독일대사관(2002.8.) 등, 이렇게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정정당당히 한국에 가는 허가를 얻고 싶은 탈북민들이 뛰어들었던 것이다.

모두 앞서 밝힌 인권운동가들의 헌신적 노력이 일궈낸 결과였다.


애석하게도 이들의 활동에 대한 반대급부는 중국 정부의 폭력에 가까운 강권대책이었다.

국경선의 광범위 지역에 일제 검거선풍이 몰아쳐다. 1999년의 강제송환작전을 능가하는 규모였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4월 이후 매월 수백 명씩 북한에 강제 송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증언에 따르면 이 기간에 강제 송환된 수는 약 1만 명이라고 했다.


당시 서방 각국의 외교공관에는 철조망이 둘러 처졌고, 접근하는 사람 누구나 중국 권력에 엄중 감시받는 등 要塞인지 野戰陣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설로 탈바꿈 했다.

결국,2002년 여름은 북한 난민들에 있어서는 가장 혹독한 시기였음이 틀림없다.

북한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이나 신분증을 갖지 않은 사람이 중국 公安에 발각되면 무조건 구속, 북송해 버렸다.

공안은 중국 동북부로 향하는 도로도 감시했다.

국경경비대도 증강되고 발각 즉시 모든 탈북민을 체포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자원봉사자들, 특히 기독교 네트워크 멤버들도 오늘날에는 마찬가지로 탄압받고 투옥되거나 고액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민들은 어쩌면 좋은가?

종국에는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가? 대다수의 경우 그것은 생각조차 못할 노릇이다.

남은 길은 불법체류자로서의 생활밖에 없다.

최하층 노동을 감수하고 법적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압록강 남쪽에 두고 온 가족의 연명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는 암시장에서 약 천 달러나 된다는 중국 체류허가증을 손에 넣기 위해 忍苦의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국경을 넘다 실패한 사람들 혹은 붙들려 북한권력에 인도된 사람들은 체포 즉시 간단한 심문만으로 투옥된다.

체포, 심문, 투옥까지는 수일에서 수주 간이다.

재범자나 종교단체와의 접촉이 밝혀진 자 또는 1년 이상 부재가 판명된 자들에 있어서 사태는 한층 복잡하고 심각하다.

노동수용소로 가게 되거나 요덕이나 그 밖의 정치범수용소行도 각오해야 한다.


배고파 못살겠다고 도망쳐 나오는 슬픈 형제자매들 말고 민족적 양심의 슬픔 때문에 이탈하는 이른바 북조선 엘리트들도 있다.

그 수는 많지는 않지만 권력자의 마음에 들어 좋은 대우를 받고 국제회의에 파견되는 틈을 타서 탈출하는 경우를 보면, 가령 그것이 흔치는 않은 일이지만, 난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파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1991년 5월에는 자이레(지금의 콩고)의 북한 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高英煥)이, 1996년 1월에는 잠비아 주재 대사관의 현성일이, 1998년 2월에는 FAO의 북한 대표부 서기관이었던 김동수가 망명했다.

아직 기억도 새로운 1997년 2월 <主體>의 산파역 黃長燁의 망명은 북한의 현실을 응변으로 설명한다.

황장엽과 동지 金德弘의 망명은 특히 그 정치적 성격을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 반대하는 의견을 진술하고 증언하는 것을 오랜 기간 한국정부에 의해 저지당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김대중 정권에 의해 북한을 돕는 이른바 <햇볕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구실이었다.

그런데 과연 햇볕정책의 결과는 오늘날 어찌 되었는가.

엊그제 실시했다는 北核實驗은 뭘 말하는 것인지 남쪽에서 보낸 햇볕이 얼마나 잘 쪼여졌는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 후 속--

-- 다음은 金正日 정밀해부로 이어집니다.

-- 華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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