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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워쳐(20)-軍權의 변칙지배하에 國家는 없다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06년 11월 07일 AM 11:40:08

정책전환은 김일성 죽음과 함께 끝나고...


아들 김정일이 1993년 3월 전국을 전쟁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자, 金日成은 즉각 親政體制를 본격화한다.

김정일로부터 기피되었던 둘째 부인 金聖愛, 동생 金成柱 당 정치위원 겸 조직지도부장 등이 활동무대에 복귀했다.


김일성은 각지 현지지도, 국가행사 참석, 외국손님 맞이에 엉덩이 붙일 틈 없이 분주히 돌아갔다.

거기에 동석 동행하는 자가 김성애, 김영주 등 그밖에 거의 정무원 간부, 지방행정간부들이 되고, 김정일이나 그 측근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93년 6월경부터 김정일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서기, 군사위원의 당 직함을 쓰지 않게 되었으며, 국가국방위원장 인민군최고사령관 직위만 남게 되었다.

93년 12월 당 중앙위 총회 최고인민회의는 드디어 제3차 7개년계획의 실패를 인정하고 <농업 경공업 무역 제1주의>에 의한 3년간의 <조정기간>을 설정하였다.


그 조정기간의 경제건설 주역에 政務院을 앉히고 권한과 자금을 정무원에 집중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때 김영주는 전 조총련 부의장으로 조선사회당위원장에 불과했던 金炳植과 함께 부주석 중앙인민위원이 되고 당정치국에도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黃長燁 서기를 당 국제담당서기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에 임명하고 이듬해 94년 1월에 중국에 파견한다.


이 같은 인사는 김정일 측근으로 보는 金容淳 서기의 당 정치국원 후보 해임, 金達玄의 정무원 부총리 국가계획위원장 해임을 가져온 것으로 보더라도 완전히 김일성 친정체제를 굳히는 인사라 할 수 있다.

경제분야 뿐 아니라 당 정부의 정책에 김정일이 넘볼 곳은 어디에도 없어진 것이다.


김일성은 94년에 들어 정무원 중심의 경제회생에 나서면서 대외정책의 전환도 꾀했다.

최후로 6월, 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을 초청해서 대담한 전환을 시도했다.


미국측의 경수로 제공을 조건으로 흑연원자로가 동결 폐지되고,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의와 일․북한 회담 개최안 등이 나왔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에 의한 한반도 긴장완화와 국면타개에 크게 기대를 걸고 죽기 직전까지 그 준비에 몰두했다.


그리고 7월 6일에는 경제의 개방조치라든가 정무원의 권한 강화에 대해 중요지시를 내린 소위 <6.7 遺訓>을 남기고 7월 8일 김일성은 묘향산 특각에서 아들 김정일과의 말다툼 끝에 급사했다.

결국 북한의 정책 전환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북한에는 국가체제는 없어지고 오직 군대조직만 남게 되었다.


김일성 독재 하에서는 그런대로 형식적이나마 당 중앙위 총회나 당 대회 최고인민회의 선출을 거쳐 실질적으로는 정점이의 수령이 신임하는 각 간부에 개별 종적으로 그의 권한과 책임의 일부씩을 위임했다.

그 정점이 없어짐으로써 당권, 정권, 간부들은 권력 원천을 상실하고 의사결정의 근거를 없애버렸다.


단지 <군권>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헌법에 주석에 이은 대권을 부여한 국가국방위원장이 있고 또 최고의사결정기관에 제약 받지 않는 상의 하달시스템이 기능하고 있다.

그 중, 군권 최고위에 서는 김정일이 유일 의사결정자로서 나타난다.

그는 김일성 사후도 당 관계 직함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공화국 국방위원장, 인민군최고사령관> 직함만으로 등장한다.

즉, <군권>을 장악한 입장에서 유일권력자로서 일상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80년대에 당 실무를 맡으면서부터 세세한 보고를 자기 혼자만 알고 김일성에게는 일부만을 전달하고 전결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한다.


망명자들 증언에 의하면 그는 매주 목요일을 결재일로 정하고, 그날까지 요결재 서류를 산더미처럼 책상 위에 쌓아놓고 이튿날 아침까지 철야로 한 장씩 넘기며 사인을 한다.

거기서 충분한 검토나 고려 없이 사인해 버려서 서로 모순되는 결정이 하달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였다는 것이다.

서류를 수요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결재가 1주일간 뒤로 밀리기 때문에 큰일이었다는 것이다.

사인 작업이 끝나면 금, 토, 일 3일간은 주연이나 사냥 노리로 일상을 지내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하부 중요공장 등에 가면, 공장 당책임서기의 책상 위에 <김정일 친필지시>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을 멋대로 우선순위를 붙여서 실행하고 있다.

뇌물을 바쳐서 순위를 바꿔버리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모름지기 그런 상황이 김일성 사후도 재연되었으리라.

김정일은 당 조직이나 행정조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정책이나 방침을 내고 국정을 움직일 수는 없다.

단지, 유일 결정권자로써 결재서류에 사인하는 권세를 행사하고 있을 따름이다. 즉, 변칙지배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당권 장악시기에는 당 서기국 산하의 당 중앙 각부에 심복을 심어 놓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조직부 제1부부장 張成澤, 선전선동부장 金己男, 간부부장 金國泰, 군사부장 李河逸, 통일전선부장 金容淳, 작점부장 吳克烈, 중공업담당서기 全秉浩 등을 심복으로 부리고 있다.


(1995년 현재) - 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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