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린 중앙선관위의 엄격한 잣대를 들고 예사롭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선관위 결정에 대해 '존중하지만 납득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선관위는 즉각 '존중한다면 행동으로 보이라'고 되받아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의 불만도 이해가 안되지만 선관위가 반격에 나선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청와대를 향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존중해주길 바란다"며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독려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통령이 중립을 훼손하는 발언을 하면 공무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은 선관위의 미지근한 대응에 일면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

선관위가 3일 마라톤 회의 끝에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처벌 대상인 '사전선거운동'에는 해당되지 않고, 처벌조항이 없는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한 것이 화근이 됐다. 대통령의 지위를 고려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은 있지만 교묘한 줄타기 결정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행 중앙선관위법 14조는 각급 선관위의 위원.직원은 직무수행 중에 선거법 위반행위를 발견한 때에는 중지.경고 또는 시정명령을 해야 하며, 그 위반행위가 선거의 공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것으로 인정되거나 중지.경고 또는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는 때에는 관할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또는 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중앙선관위가 노 대통령의 불법을 확인하고도 선거중립의무 준수 요청에 그친 것은 유권해석에 대한 적절성 논란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야권은 선관위가 단순히 중앙선관위법을 근거하지 않고 선거법만을 적용, 처벌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중립의무 준수 요청이라는 법에 없는 조치를 내린 것은 선관위의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김재경 기자 kj060909@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