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발언이 항상 '불씨'제공.. 與野, 과거사 논쟁은 '정략'적 수준에 불과 - '유신독재'와 '친일진상규명특별법'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30일 발언은 정치권에 또 다시 핵심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30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역사세우기 작업이 사실상 '전면전'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반발했고,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진상 규명 관련법의 통합과 논의 기구 마련"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최근 펼쳐지고 있는 정치권 이같은 움직임은 민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모적 논쟁에 지나지 않아 여야 모두 '거꾸로 가는 역사'를 만드는데 급급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열린당은 지난 총선 이후부터 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열린당은 노 대통령이 어떤 의미 담긴 말 한마디만 하게 되면 그 의미를 확대해석하기에 급급하면서 그것을 제2-제3탄의 야당 비난성 공격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더욱이 근래 들어서는 열린당이 노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일부 여론의 지적도 있다. 지난 8일 노 대통령 인천지역 발언이후에도 그렇고, 일부 보수언론이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는 발언도 열린당은 이것을 재탕,삼탕하기에 주력했다.

김현미 열린당 대변인은 31일에도 "한나라당의 정체성 공방은 부질없는 짓"정도로 평가했다. 이는 열린당이 추진하는 '친일진상규명법'은 국가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정당한 것이고 '국가정체성'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한낮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집권 여당의 대변인이 원내 제1야당의 '국가정체성'위기 주장을 논할 가치조차 없다하는 말은 국민 의사의 절반정도를 부정하겠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대변인은 특히 모든 정치적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재 다수석을 가진 여당의 힘이라면 야당의 주장을 얼마든지 묵살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부분이다.

이같은 이유에서 최근 노 대통령의 입에서 말 한마디만 터져 나오면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확대, 일부 보수언론과 야당대표를 겨냥해 입에 담지 못할 독설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열린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두하다 보니 연일 열린당의 공세에 맞 대응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런 미온적인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당으로서 대정부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다. 

한나라당의 경우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도 그렇고 '유신독재'문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남파간첩.빨지 출신 민주화 인사 인정 문제도 뚜렷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그저 청와대와 열린당을 공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들어 쟁점화 되고 있는 '유신독재' 문제와 관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청산할 것이 있다면 깨끗이 청산하고 가겠다'며 강경 돌파의지를 나타냈다. 박 대표가 이처럼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히고 나오자 강공을 펼치던 여당은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밝혀야 한다며 구체적인 제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수의 숫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열린당은 이제 '모든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하자'는 식으로 입장을 급선회, 한나라당과의 전면전 대응을 의석수로 대응하겠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열린당의 그 같은 정략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현재 빚어지고 있는 여야의 대립감정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열린당의 다수석에 의한 국회 의존행태는 이미 여러 각도로 증명이 되고 있다. 그 예로 지난번 논란이 됐던 제2기 의문사위의 간첩.빨지산 출신들의 민주화 인사 인정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자 여당은 앞으로 의문사위의 활동근거를 대통령소속이 아니라 국회로 바꾸자며 책임 소재를 국회로 떠넘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편 국회 의석 수의 우세를 믿고 모든 정책을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끌고 가는 열린당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끝없는 공방 종결은 최종적으로 국민들의 여론 향방에 달려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처럼 일부 특정여론의 선동 결과를 가지고 마치 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어낸 것처럼 조장한다면 정치권 공방은 또 다른 '국론분열'의 기폭제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권혁철 기자 khyukc@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