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미국 국무부장관이 한중일 3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원래 미국이란 나라의 위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한 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관계로 그 어느 때보다 미국 국무부장관의 아시아 방문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관심의 표적이 되어 왔다. 톱스타 뒤를 따라가는 파파라치처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언론의 취재대상이 될 정도였다.

북한을 가르켜 '폭정의 기지'라고 발언을 한 것을 빌미로 해서 북한은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했고, 줄곧 그 발언에 대해 취소와 해명을 북한이 요구하여 왔기 때문에 더더욱 라이스의 청문회 때의 주목받았던 각선미보다 다부진 그녀의 입을 더 중요시해왔었다.

라이스의 계산된 이율배반

아시아 3국 방문에 있어 그녀의 행보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보여주었다.
먼저 그녀는 유독 한국에서만 북한을 '주권국가'라고 대우를 해주었다.
아마도 국제사회에서 보수는커녕 돈을 갖다바치면서도 기꺼이 북한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는 남한의 정권담당자들과 민족주의자들에게 대한 립써비스 차원인 듯 싶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행한 그의 행보는 이제 껏처럼 북한의 무조건적인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 일정 한계 시한을 벗어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채찍 쪽에 무게가 더 실린 언행을 한 것으로 보면 남한의 입장을 배려한 듯한 발언이 아닐까 싶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중국과 일본에서 한 언행과 한국에서 한 언행에 있어 라이스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 것은 북한 핵문제 있어 우리의 위상을 잘보여주는 것이리라.
미국의 동맹국도 아니고 적대국도 아닌 이 여자도 놓치기 싫고 저 여자도 놓치기 싫어 결국 결혼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총각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 같다.

이제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듯 하다

이미 IAEA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이란의 핵문제보다 북한의 핵문제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발언을 했었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북한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과 제제조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등의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이 6월말까지라는 구체적 시한표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판국에 라이스가 중국 방문길에서 행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라고 한 발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명백하게 이제 북한핵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공이 다시 북한의 네트로 넘어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후에야 북한이 얻을 것도 미국이 줄 것도 있을 것이란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일단 6자회담으로 먼저 나서란 뜻인 것이다.

남한이 북한의 핵장난의 인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북한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혹은 스스로 인질이 되어준) 것은 분명하고 자칫 잘못 다룬다면 북한의 핵문제가 대한민국의 사활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입장만을 전적으로 두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언제까지 북한의 대변인으로만 자리매김하고 있기는 그렇고 어느 쪽을 선택하던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할 처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남한 인질론에 있어서만은 분명 시간이 북한의 편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것처럼 북한은 남한이란 확실한 인질을 잡고 있고, 게다가 인질범들에게 호의적인 중국이란 인질협상 국가가가 있어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중국으로만 넘어가도 이미 상황은 달라지고 만다.

그 외의 국가에 있어 시간은 결코 북한의 것이 아니다

첫째 중국만 하더라도 그들은 직접적으로 북한핵문제 있어 인질의 역할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번 기회에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인질협상국가로써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입장이 더 강하다. 인질 사태가 잘만 해결되면 그보다 더 나을 것은 없지만 자신들의 지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간다고 해도 남한처럼 치명적 상처를 입을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3월5일에 올린 "중국의 한반도에 있어 건설적 역할은 가능한가"란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중국에 있어 북한은 있으면 좋은 것이 분명하나 그렇다고 脣亡齒寒的 입장이 걸린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둘째 일본에 있어서도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그들의 국군주의화에 대한 대의명분을 더 세워주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키워줄 사안이기 때문에 북한이 오판하고 있는 것처럼 시계의 바늘을 쥐고 있는 쪽은 북한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지만 한반도에 있어 위기나 재난을 그들의 경제력을 키우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군군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온 쪽으로만 이용해온 그들이다.
그들은 북한이 더 버텨주면 줄수록 도리어 (속으로)감사해하면 했지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폭한 북한의 존재는 난폭한 일본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을 국제적으로 공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은 한반도에 있어 궁극적 전쟁 방지가 국익의 사활적 명제가 아니라, 핵문제의 국제적 확산 방지와 일본과의 군사일체화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에 있어 영원한 동맹국을 얻으면서 미국 국익의 극대화에 대한 수단적 차원의 문제로 북한 핵문제가 格下된지는 이미 오래다.
럼즈벨트 미국 국방부장관도 그랬지 않은가.
한반도에 있어 방어력은 지속적으로 한국군에 전적으로 이양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미 한반도는 일본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써의 메리트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발언이다.
즉 미국은 북한핵문제에 임하는 태도와 목표는 평화적이든(그렇게 되면 가장 좋지만) 비평화적이든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의 폐기'이며 '국제적 핵확산의 방지'에만 있을 뿐인 것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이제는 선택을 해야한다

대한민국과 무엇보다 북한이 명심해야할 것은 대한민국 인질의 유용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질사태를 해결함에 있어 인질의 유용성이 희박해지면 결국 강제진압 밖에 더 있겠는가.
인질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인질사태의 해결에만 촛점이 주어진다면 사태가 어찌될 것인가.
인질의 생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번 인질사태의 어정쩡한 해결이(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가져올 또 다른 인질사태의 확산의 부작용을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일정부분 인질의 희생을 감안한 사태의 해결을 도모할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미국과 일본은 그러한 쪽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정말 시간은 북한의 것도 대한민국의 것도 아니다. 결코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

<중앙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