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7년 전 군 근무시 대만 군과의 공식회의 차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4룡 중 맏형으로 나머지 3룡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대만은 막내였다.

대만의 경제개발전략은 중소기업과 가내공업 육성이었다.

대기업 육성시 빈부격차로 국민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막으려는 정치적 고려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국민갈등으로 이용한 공산당의 술책으로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대만으로 쫓겨 오면서 배운 역사적 교훈과 반성의 결과이다.

당시는 미국의 소소한 생필품은 대만제가 휩쓸고 있었으나 -지금은 중공제가 대체- 경제발전에 한계를 느껴 한국식 경제개발전략을 도입하는 초기단계였다.

우리일행은 토요일에 대만군의 안내로 대만의 두 번째 도시인 가오슝(高雄) 해변에 있는 수출가공단지(면세지역) 시찰을 갔다.

화이트 셔츠가 고가수출품이었으며, TV 생산현황을 안내장교는 자랑스레 브리핑했다.

시찰이 끝나고 가오슝의 관광명승지 몇 곳을 들렀으며, 그 중 한 곳이 장제스(蔣介石) 별장이 있었다.

제법 넓은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아담한 정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안내장교로부터 놀랄만한 설명을 들었다.

이 별장에 장학량(張學良)이 1988년까지 연금되어 있었고, 장개석이 방문하면 함께 호수에서 낚시질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장학량(張學良)이 누구인가?

그는 서안에서 장제스를 체포하여 제2차 국공합작을 성사시켜 멸망직전의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을 구원하였고, 그 결과 장제스가 대륙을 잃고 대만으로 쫓겨 가는 신세로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장제스는 장학량이 남경으로 따라왔을 때도 그를 사형시키라는 일체의 주장을 뿌리치고 구두로 약속했던 국공합작을 성사시켰으며, 대만으로 쫓겨 왔을 때 이 모든 원인이 서안사변에서 비롯된다는 국민당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나, 장제스는 장학량을 요주의 인물로 분류하여 자택연금 조치만 취했을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제스의 마음 그릇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첫째는 구두로 약속한 제2차 국공합작을 지킨 점이다.

제2차 국공합작은 협박 하에서, 문서로 한 약속이 아니므로 풀려나 수도인 남경으로 돌아와서 얼마든지 백지화시킬 수 있었음에도 이를 지켜, “사나이의 한번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다.(男兒一言 重千金)”라는 동양전래의 유교적 가치를 그는 몸소 실천했다.

둘째는 그가 대만으로 쫓겨 와서도 장학량을 처형하지 않은 점이다.

그 때문에 대륙을 잃고 조그만 한 섬에 칩거하게 되었음에도 그를 원망하지 않고 때때로 함께 낚시질을 했다니, 그의 마음 씀씀이(度量)가 얼마나 넓고 큰가.

아마 凡人이었다면 능지처참을 했거나, 그러지 못한 입장에 부아통으로 홧병이 나서 장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보복이 끊이지 않고 어제의 은혜를 오늘 입장이 바뀌면 원수로 갚으며 철따라 둥지를 바꾸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大人과 小人輩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