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미일, 밀착하는 중일. 하토야마는 신일본제국을 꿈꾸는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1월 12일부터 19일까지 7일 동안 일본ㆍ중국ㆍ싱가포르ㆍ한국 등 아시아 4개국 순방이 끝났다.

한국의 안보적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멀어지는 미ㆍ일, 밀착하는 중ㆍ일’로 요약되며, 이는 한국의 장래적 안보관점에서 결코 안심할 수없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태동이므로 한국으로서는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현장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일본 방문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따라 미․일 안보동맹에 있어 대등한 관계추구가 무게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외국의 원수, 그것도 슈퍼 파워인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여 놓고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키 위해 손님보다 먼저 출국한 것은 비록 오바마 대통령의 일왕예방이 남아 있다하더라도 예의가 아니며, 이는 대등한 미일관계를 넘어서 미국과의 거리두기의 시작이라고 보이지 않을 수 없다.

하토야마는 총선 전에 ‘미ㆍ일 관계에서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금융위기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이상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총리로 취임한 직후 10월 10일 한ㆍ중ㆍ일 정상회담 때 “미국에 그동안 너무 의존해 왔다.”고 밝혔으며 10월29일 중의원에서 “미ㆍ일 동맹의 자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일미군의 경비부담액을 줄이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11월 13일 양국 정상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문제에 대한 조기결론 합의”를 하루만에 번복함으로써 미ㆍ일 간의 이상기류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후텐마 주민들의 미군 비행장 이전시위에 밀려 미일 양국 국방장관은 2006년 5월 오키나와(沖繩) 현의 후텐마 비행장을 같은 오키나와 현의 나고(名護) 시에 있는 주일미군 슈와브 기지로 2014년까지 이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은 그동안 자민당 정권에서 합의한 대로 연내에 재확인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하토야마 정권이 총선공약에서 현외 또는 국외이전을 약속하면서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후텐마 비행장뿐 아니라 인도양의 다국적군 해군에 대한 일본 해상자위대의 급유지원을 내년 1월로 중단, 자민당 정권당시 체결한 핵 밀약문서 공개검토, 주일미군 지위협정 개정, 미 해병대 괌 이전비, 주일미군 기지 근무직원 인건비 지원 등에서 마찰이 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미ㆍ일 관계를 고려, 양보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전문제를 각료급 회의에서 결론을 내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에 오바마 대통령이 동의한 것은 일본이 정상회담 직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50억 달러 지원을 하기로 발표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하토야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기존의 미ㆍ일 합의파기를 거론하고 미국에 대해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 데 대해 불쾌하다는 분위기이다.

오바마 행정부 안팎에서는 하토야마 정부의 ‘공세’가 계속될 경우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를 활용, 한국ㆍ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17일 미․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자회견장에 선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두 정상은 각자 20분간 발표문을 읽은 뒤 질문도 받지 않고 곧바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무역마찰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이 시장지향적인 환율 시스템으로 나아가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간접적으로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압박하자, 후 주석은 “나는 현재 환경 하에서 모든 종류의 무역보호주의에 반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더욱 강경하게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발언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겨냥한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에너지 최대 소비자와 최대 생산자로서 양국의 노력이 없으면 해결이 어렵다. 양국은 이 분야에서 일련의 중요하고 새로운 능동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했으나, 후 주석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서로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하에 각자능력의 기초 하에서 코펜하겐 회의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해 현재의 기후위기를 초래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더 큰’ 책임을 부각시켰다.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한 어조로 양국을 경고했지만, 후 주석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했다.

양국은 연례 외무장관 회담개최와 내년에 베이징에서 2차 미ㆍ중 경제 전략회의 개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천빙더(陳炳德)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의 내년 상호방문, 양국 유학생 등 군사교류 확대를 결정했다.

이 외에 농업ㆍ민간항공ㆍ청정에너지ㆍ환경 등의 분야에서 5개의 협정 또는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반면 핵확산 방지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의 비준, 기후변화 공동대응 등 굵직한 글로벌 현안은 서로 노력한다는 정도의 선언적으로 처리됐다.

두 나라의 정상회담이 이처럼 알맹이 없이 겉돈 것은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미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글로벌 리더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반면 중국은 G2라는 틀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경제적 지위에 걸맞게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지만 후 주석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양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중일정을 둘러싸고도 적잖은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지난 16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타운 홀 미팅만 해도 생중계 여부와 대화형식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일본 방문 중에 양측은 일정을 협의하기도 했으며 방송에서도 검열을 거쳐 많은 부분이 삭제되는 등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전례 없이 소홀했다.

이번 방중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것 말고는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려우며 두 나라가 진정한 G2로 가기까지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중 관계를 보면 유례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1972년 국교정상화 이래 중국과 일본은 외교적인 관계를 지속하여 왔으나 과거사문제, 국민감정 등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반목과 불화로 인해 정치, 경제, 군사 측면에서 상당한 알력을 보여 왔다.

그러나 탈냉전 후 최근 양국 간에 아시아적 가치를 공통분모로 상호보완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9월 UN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하토야마 차기총리는 23일 후진타오(胡锦涛)주석과 가진 첫 회담에서 유럽연맹을 모델로 함께 협력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중국과 형제 같은 우호관계를 맺길 원하고 있다. 이는 내가 제안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형제’로 중ㆍ일 관계를 표현한 사람은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 지도자 중 처음이다.

이런 이유로 하토야마 총리가 말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말은 중국 측에 깊게 와 닿았다.

양국 정상회담 3일 전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장위(姜瑜)는 “중국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이 더욱 깊은 동아시아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 나갈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환치우스바오(环球时报)’는 네티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3%의 네티즌들이 중․일이 서로 협력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이 같은 제안은 단순한 ‘중국 친화적 행동’이 아니며 일본의 이익을 고려한 제안이다.

그는 8월27일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일본의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통해 영토분쟁에 대해 당사자 국가들끼리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며 유럽연맹식의 지역 일체화만이 대립을 줄일 수 있고 영토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월간지 ‘보이스’ 9월호 기고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 삼아 경제협력과 안전보장의 틀을 만드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한ㆍ중ㆍ일 정상회담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하토야마 총리는 10월 10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회담에서 동중국해 가스전 문제와 관련하여 “과거 독일과 프랑스도 여러 다툼이 있는 가운데서도 석탄ㆍ철강공동체를 시작해 최후엔 유럽연합(EU)까지 만들었다.

이와 같은 발상에서 중일 양국이 동중국해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함께 땀을 흘려 공동 개발함으로써 동중국해를 우애의 바다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원 총리는 “우애의 바다, 우호의 바다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중국 인민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1952년 발족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EU의 모태가 된 것처럼 중․일 에너지 공동개발이 자신의 지론인 동아시아 공동체가 지향할 방향의 일단임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인식문제와 관련, 원 총리는 “중국 인민의 관심사는 역사문제에 있다.

하토야마 총리에게는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견지하는 바른 태도가 있다.”고 언급했고 이에 하토야마 총리는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인 중일관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편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11월 11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중국인 양부모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일본 전쟁고아 출신 45명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원 총리는 이미 70대가 된 일본 전쟁고아들에게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은 소수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있으며 일본인도 피해자이다. 중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당했지만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지 않고 일본이 버리고 간 전쟁고아들을 입양해 돌봐줬다.”라며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중국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당시 일본 전쟁고아 2800명을 입양해 기른 후 양국관계가 회복되자 1980∼1990년간에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같은 날 일본 도쿄 학습원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부인이자 유명 가수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이끄는 중국 인민해방군 가무단 120명이 일본 왕립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중국 고대 여자영웅 화목란(花木蘭)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가극 목란시편(木蘭詩篇)을 공연했다.

펑 여사는 나루히토(德仁) 일본 왕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 마지막에 직접 무대에 등장, 일본 가수와 함께 가곡 ‘사계’를 불렀다.

예술감독을 맡은 펑 여사는 인민해방군 소장(少將)으로 지난 1일 중국 건국 60주년을 축하하는 갈라 디너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번 펑 여사의 일본 방문은 단순한 문화교류의 차원을 넘어서 차기지도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시 부주석의 12월 중순 일본 방문에 앞서 중․일 관계를 부드럽게 하려는 뜻도 있어 보인다.

일본도 중국의 화해분위기 조성에 적극 호응, 하토야마 총리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을 이끌고 온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일ㆍ미 관계는 중요한 동맹관계지만 아시아 제국과의 신뢰관계 구축에 노력하고 싶다. 중국과는 지금까지 이상의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며 일․중 관계강화를 제의했다.

이미 지난 10월 5일 영국 데일리 포스트는 중국과 일본이 연맹결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포스트는 “양국은 현재 동아시아 공동체를 논의 중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와 정치관계를 개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현재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지만 양국은 관광, 공공보건, 에너지 및 환경 분야에서 제휴하기 시작해 점차 제휴범위를 확대해 비교적 민감한 정치문제와 농업 및 국방관련 분야에서도 협력할 계획이며 최종적으로는 동아시아 통합화폐를 발행할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 이렇게 변하여 가고 있는 주변국의 정세가 우리의 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미소 탈냉전 이후 미․일 동맹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봉쇄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중국이 이에 군비증강으로 맞서면서 ‘신냉전’이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제협력을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막겠다는 네오콘의 전략이 퇴조하고 중국의 강대국화를 인정하면서 경쟁보다는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5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하면서 중국을 경쟁자보다는 동반자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는 한국의 안보여건의 지각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한반도는 이들의 완충지대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멀어지는 미ㆍ일 관계와 접근하는 중․일 관계의 중심축에는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서 있다.

그는 중국의 대륙패권을 인정하는 반면 일본의 해양패권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은 중국의 티베트, 신장 위구르, 내몽고, 만주 나아가 동북공정으로 표현되는 북한의 복속까지 인정하여주는 반대급부로 태평양 전쟁 전 일본의 세력권 회복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일본은 아태지역 해양지도국으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나, 그 앞에는 미국이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끌어드려 배후세력으로 삼고 앞으로 아태지역 주도권 다툼에서 최소한 공동통치자로서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내지 일본에 예속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미동맹의 강화와 한․미 연합사 존속 그리고 작전통제권 환수유보의 의미가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