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룽강(黑龍江)은 중국과 러시아 동쪽 국경지대를 흐르는 강이다.
헤이룽강 중류쯤에 헤이허(黑河)란 국경도시가 있다.
헤이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금은 헤이허의 부속도시가 된 아이훈(愛琿)이 있다.

1858년 청(淸)이 러시아에 불평등 국경조약을 강요당한 곳이다.
헤이허와 아이훈 사이 강변에 규성각(魁星閣)이란 이름의 누각이 하나 있다.
그 누각에 올라가 보면, 중국인 슈워제네거라고나 해야 할 근육질의 역사상(力士像)이 서 있다.
웃통을 벗고 울퉁불퉁한 팔뚝의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고 부릅뜬 눈으로 헤이룽강 건너편 러시아 땅을 노려본다.

중국인들은 “러시아 ‘돼지’들이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말한다.
헤이룽강 곳곳의 삼각주들은 홍수만 들면 모양이 변하고,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는 늘 국경선을 놓고 티격태격 해가며 살아왔다.

그런 묘한 사이인 중국과 러시아가 사상 최초의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18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근해에서 시작된 연합훈련은 마지막날인 25일 칭다오 남쪽 자오난(膠南)시 남쪽의 랑야산(琅王牙山) 부근 해안에 연합 해병대가 상륙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상륙지점을 놓고 홍콩의 문회보(文匯報)는 “해안의 지형이 대만의 어느 해안과 비슷하다”고 했다.
‘평화의 사명 2005’라는 이름의 이 연합군사훈련이 대만의 독립저지를 겨냥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군사훈련의 목표가 대만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내부 통일문제에 외국군, 그것도 러시아를 끌어들인다는 생각을 할 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러시아로서도 중국군이 대만을 공격하는 내전(內戰)에 끌려들어가는 개념의 훈련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중국과 러시아 군대가 상륙훈련을 한 가상 적국(敵國)은 어디일까?

랑야산은 진시황(秦始皇)이 동쪽 끝으로 여행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석비(石碑)가 서있는 곳이다.
지도를 펴놓고 동쪽으로 돌출한 산둥반도의 지형을 보라.
산둥반도란 원래 중국사람들이 한반도와 비슷하게 보아온 곳이다.

칭다오를 우리의 인천쯤으로 본다면, 랑야산이 있는 곳은 평양의 서쪽 해안쯤에 해당한다.
중·러 연합군이 평양의 서쪽 해안을 가상 적지로 삼고 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 과장이라고?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최근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과 미 스텔스기의 한반도 이동 등으로 빚어졌던 한반도 위기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 전환’(regime change) 시도설과, 혼란에 빠진 북한에 관한 각종 시나리오 등을 고려하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이익이 함께 걸려 있는 곳, 중국 사람들 표현대로 미국의 ‘단변적(單邊的·one side)’ 행동에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해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곳, 그곳은 아무래도 대만보다는 한반도일 가능성이 높다.

하기야 “중·러 연합훈련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태평양 주둔 미군의 기동화 전략”이라는 말을 중국 지도자들은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중·러 연합훈련에서는 냉전시대 낡은 사고방식의 냄새가 풍긴다.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들어와서 ‘화평굴기(和平　起·평화롭게 일어선다)’라는 말도 주변국을 자극한다 해서 ‘화평발전(和平發展)’이라는 말로 바꾼다더니, 웬 중·러 연합 불꽃놀이인가?
현 중국 지도부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남긴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 실력을 기르자)’의 교훈을 버리고 때 이른 햇빛 아래 칼날을 번뜩이기로 한 것인가?

박승준 중국전문기자 sj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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