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에서 전투헬기로 가장 유명한 건 아파치 헬기다. 프랑스 육군의 타이거와 함께 전세계 전투헬기중 가장 정교하면서도 파괴력이 높은 무기로 알려진 아파치 헬기는 실제 전장에서 놀라운 전투능력을 과시하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바로 이 아파치 헬기를 조종하는 한인이 있어 화제다. 특히 그는 여자다. 남자들도 힘든 아파치 헬기를 직접 몰고 전장을 누비는 미 육군 중위 이상미(26·미국명 애쉴리)씨는 "전선의 제일 앞에서 뛰고 싶었다"며 아파치 조종사가 된 이유를 밝혔다.

현재 전 세계에 여성 아파치 조종사는 43명. 그녀는 그중 유일한 한인 여조종사다.

롱보우 아파치를 아십니까

그녀가 조종하는 것은 아파치헬기 시리즈 중에서도 롱보우다. 지난 1997년 개발된 제 4세대 공격용 헬기로 정지했거나 이동 중인 목표물을 탐지, 식별해 자체적으로 공격을 수행할 수 있으며, 주야간은 물론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천후 헬기로 알려져 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레그부대 소속인 이씨는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텍사스주 포트 후드부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롱보우 조종훈련을 받았다. 이씨는 이미 2001년 비행학교 졸업한 뒤 같은해 12월부터 3개월간 롱보우 훈련코스를 수료한 유경험자다.

그러나 이번 훈련은 만약 전장에 나가가게 된다면 생사의 길목에 함께 뛰어들어야 하는 포트 브레그 동료들과 동행한 훈련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롱보우 아파치 헬기를 타고 미사일을 발사해 본 흥미진진한 경험도 했다.

처음 발사버튼을 누르던 날

아파치 헬기에 첫 시동을 걸었던 날보다 처음으로 로켓을 발사했던 날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2001년의 어느 밤이었다. 다른 수송헬기와 달리 아파치엔 두명의 조종사가 앞, 뒤로 앉는다.

보통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조종을 담당하고, 앞좌석에선 조종과 함께 무기 조준을 맡는다. 이날 앞자리는 이중위의 몫이었다. 멀리 표적이 보였다. 순서에 맞춰 로켓을 발사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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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을 가르고 로켓이 표적에 맞아 폭발했다. 밤 하늘 멀리 밝은 빛이 번쩍였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그 아파치 조종석이 "내가 있어야 할 그 곳"이란 확신으로 다가왔다.

두달전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 훈련은 더욱 짜릿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긴장의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이중위는 흥분한 목소리로 '미사일 처음 쏘던 날'을 떠올렸다. 한번 발사하면 그대로 가서 터지는 로켓과 달리 미사일은 표적에 맞춰 놓으면 조종이 가능하다. 가격면에서 현저히 비싸 함부로 쏠 수 없는 무기다.

"그동안 로켓은 많이 쏴 봤어요. 그런데 미사일은 비싸거든요. 한 발에 3만달러하는데, 그날 2개나 쐈죠. 목표점에 가서 펑! 하고 터지는 순간…. 와우, 정말 흥분됐어요"

기체내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는데, 거기에도 목표를 명중한 자신이 내지른 환호성이 그대로 담겨 있더란다.

군인은 군인일 뿐

동료 군인들은 이중위 에게 "너는 다른 여자들과는 좀 다르다"고 말한다. 여군이라고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남자 전우들이 이중위의 모습이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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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위는 남자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운동도 잘하고, 아무리 무서운 상황에서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강심장이다.

농구를 가장 좋아하고, 테니스 수영 크로스 컨추리 등 만능 스포츠 우먼이다. 높은 곳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공포의 훈련도 이씨에게는 오히려 흥미와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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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힘들 때는 없다.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할일을 해야하고, 하라는 일을 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그러나 혹시 사병들이 힘겨워 하지 않는지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지치면 독려하고, 힘들어 하면 기운을 북돋아 줘야 하는 것이 장교인 그녀의 할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여군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떠올린다고 한다. 출근도 가장 먼저 하고, 가장 나중까지 남아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병들에게 단순히 '여군 장교'가 아닌 '닮고 싶은 군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게 가장 큰 소망이기도 하다.

미국을 지키는 한인 여장부로

2001년 4월부터 한국 춘천에 파견돼 2년을 보냈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열네살때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본 뒤 처음이었다.

다소 엄격한 규율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국을 알고 한국어를 배우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복무당시 한국군 아파치 조종사들이 이씨가 있던 캠프 페이지에 온 적이 있었다.

서로 자신들의 아파치 헬기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신을 처음 본 한국 군인들이 한인 여 조종사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며 웃었다.

결혼? 남자친구? 아직은 지금의 일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고 4년간의 남은 기간을 마치고 나면 제대해서 LA로 돌아올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UCLA에서 정치학 교수가 되는 것이 그녀의 또하나의 꿈이다.

"아이를 낳으면, 딸이건 아들이건 군대는 꼭 보낼거예요. 한국사람들은 미국으로부터 뭔가 얻으려고만 하는데 나라에 뭔가 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라를 지키고, 미군으로 한국도 지키고. 그렇게 미국을 위해서 나의 인생을 준다는 것 괜찮지 않아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이씨에게서 한인 여장부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이종수 기자 okjscok@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