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노동자들의 봉급을 당장 2배로 인상하시오.”
박정희 대통령의 일갈에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은 중동지역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임금을 즉각 2-3배로 인상시켰다.
물론 터무니없이 인상시킨 것은 아니다.
인상이라기보다는 정상화시킨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에 대하여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지만 비판론자들은 그의 경제개발 업적을 개발독재로 비하하고, 특히 근로자들의 복지 문제가 개발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고 하여 심지어 근로자를 착취한 비인간적 독재자로 매도하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항상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지 못한 점은 보기에 따라서 있을 수도 있겠으나 수많은 국정을 일일이 챙기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인간인 이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수행 형태를 비교분석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부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였으며 특히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에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손길과 눈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은 각부 장관과 참모들이 소관분야를 사명감을 갖고 처리하고 힘이 부칠 때는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근로자들의 복지문제가 소홀한 것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소관부처의 장관과 공직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소신껏 근로자 복지문제를 보고하였다면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박 대통령이 마다 할 까닭이 없다.

중동지역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봉급인상도 사명감 있는 공무원의 올바른 건의를 박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하여 정주영 회장에게 지시함으로써 이루어진 사례임을 감안할 때, 결코 박 대통령을 근로자들에게는 비정한 대통령이었다고 아무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70년대 중반부터 밀어닥친 중동지역 건설수출 붐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여공들에 의한 가내 수공업적 봉제 및 가발 수출에 많이 의존하여 오던 한국경제에 있어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그때의 중동지역 건설수출 현황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중동진출 업체는 도로공사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동시에 항만공사로 파고 들어갔다.
첫 발주는 1975년 3월에 신원개발(新源開發)이 이란에서 코탐사 항(港) 확장공사(4,076만 달러)를, 10월에는 현대가 바레인에서 ASRY (Arab Shipping and Repairing Yard : 아랍 조선 및 수리소) 건설공사를 수주 받았다.

ASRY 공사는 공사금액 1억 3,700만 달러로 당시까지 국내 건설업체가 중동에서 수주한 공사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이 공사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새로운 중동진출 시대를 열게 된다.
ASRY 공사는 1975년 10월 1일 착공, 만 2년만인 77년 9월 30일 완공됐다.
공사내용은 바레인의 무하라크 섬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매립지에 50만 톤급 유조선을 건조 및 수리할 수 있는 드라이 도크를 비롯해 각종 건물, 공장 등을 건설하는 것으로서 토목·건축·기재·전기 등 각 분야의 기술이 종합적으로 요구됐다.
이 공사에 참여한 인원은 상주요원 160명, 각종 기능공 1일 평균 2천명으로 연인원은 토목공사 33만 명, 건축공사 26만 명, 전기공사 25만 명으로 모두 90만 명이 넘었다.

ASRY 공사에 이어 1975년 11월 현대는 두 번째로 대형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해군기지 확장공사였는데, 걸프 연안의 안전보장과 출입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동부 주베일 지역의 기존 해군항을 확장하는 사업이었다.
한국 업체의 사우디 진출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에 맡은 공사였던 만큼 관심도 컸다.
현대는 사우디 최초의 이 공사를 공기를 앞당겨 성공적으로 완공, 사우디 시장에서 기반을 다졌다.
공사 규모가 처음엔 1억 8,150만 달러였으나 공사 도중 설계변경으로 2억 2천만 달러로 늘어났다.

1976년 6월에는 현대건설이 사우디에서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 받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9억 4천만 달러에 달해 우리나라 해외공사 사상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공사를 수주 받았다는 것이 보도되자 온 국민은 국가적인 경사로 받아들였다.
9억 4천만 달러라는 액수가 당시의 국민에게 주는 느낌은 현재 사는 사람이 느끼는 9억 달러와는 그 영향력에 있어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 액수는 당시의 환율로 따져 4,500억원으로, 당시 정부 예산의 약 2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한다면 1997년도의 정부예산이 약 80조원이기 때문에 이의 25%인 20조원, 즉 250억 달러에 해당하는 공사를 수주 받았을 때 국민들이 느끼는 정도의 막대한 액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외국 보도에서도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는 말로 표현됐다.
이와 같은 대공사를 수주하기까지는 정부의 외교적, 정책적 지원과 현대건설 간부들의 노력이 크게 기여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에 있어 열사(熱沙)의 공사장에 투입된 근로자들의 피땀어린 노동과 헌신적인 근로정신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대재벌의 위력에 가려 국가경제 건설에 기여한 이름 없는 근로자들의 공로는 기록되거나 인정되거나 기억되지 않고 있다.

근로자들의 봉급인상 경위는 다음과 같다.
당시 현대건설 회장은 고 정주영씨였고 국내담당 사장은 이○림씨, 해외담당 사장은 이○박씨였다.

알다시피 중동지역의 기후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하나의 시련이었다.
한낮의 기온은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며 사막의 모래바람은 안질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니 찬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찬물을 많이 마시니 배앓이를 자주 겪게 되었다.

업체로서는 경영적으로 볼 때 무엇보다도 공기단축이 급선무였다.
공기가 단축되면 단축될수록 이윤이 커지고 발주처에 대하여도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야간작업과 토, 일요일 작업을 강행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무리수가 따르게 된 것이다.
안질환자와 배앓이 환자에 대한 치료대책이 부실하였으며 인격과 체면을 무시한 현대의 강압적 노무관리로 근로자들에 대한 폭행사태가 종종 일어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임금문제였다.
당시는 해외근로자의 수요가 폭등하던 시기인지라 각 업체가 자체적으로 근로자를 대량모집, 교육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해외개발공사 등에서 근로자를 모집, 교육시키고 대리로 계약을 한 후 인력을 공급하는 체제였다. 계약서는 간단하게 일괄적으로 인쇄된 용지에 “본인은 월급 20만원 (또는 직종에 따라 30만원)으로 해외 사업장에 취업을 신청합니다”로 쓰고 서명 날인하는 형식이었다.
이 계약서에 근거하여 현대는 연장작업을 하면서도 잔업수당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무지하여 잘 모르는 근로자들은 그런 대로 넘어갔으나, 일부 근로자들이 잔업수당 지불을 요구하였고 현대는 계약서를 이유로 이를 묵살하였으며 근로자들은 현지에 나와 있는 공관의 관계공무원에게 민원을 제기했으나 현대의 로비에 의하여 이 또한 묵살되었다.

이와 같이 내면적으로는 갈등이 고조되어가고 있는 시점인 1977년 봄에 근로자 구타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중동지역 현대건설 사업장에서 대규모 스트라이크가 발생하였다,
사우디에서의 경우에는 관리사무실을 방화하고 노무관리자들을 감금하여 경찰이 출동하였으나 무위에 그쳐 사우디 군이 출동하여 진압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보도를 통제하였으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우디 국민에게 미친 정치적, 심리적 파장 때문에 심각한 외교적 사안으로 발전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사건조사단장 겸 사우디 정부에 대한 진사 사절단장에 권력기관의 해외담당 총책임자인 이○영 중장을 임명하고 중동지역에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본국으로부터 사건을 조사하여 단장에게 보고하라는 훈령을 받은 조사관이 어떠한 각도로 보고하느냐에 따라 처리방향은 180도로 달라 질 수 있었다.
당시의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건설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강력한 건설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수출보다 더 우위인 가치는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근로자들의 과격한 행동에 책임을 물어 불순한 세력의 책동으로 결론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사관은 투명하고도 엄정하게 조사하여 객관성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내용을 수정함이 없이 그대로 박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으며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정 회장을 호출, 근로자 봉급 2배 인상을 지시하였던 것이다.

당시 현대는 압구정에 현대아파트를 지어 정계, 언론계, 문화계, 경찰, 검찰, 정보수사기관 등의 실력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여 줌으로써 현대의 영향력은 무소불위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으므로 현대와 관련된 문제를 소신껏 처리 보고하기에는 대단한 용기와 사명감이 없고서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중동지역 근로자들의 봉급이 잔업수당으로 말미암아 2-3배로 껑충 뛰어 올랐으며 그렇다고 회사가 재정적 압박을 받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당시의 중동지역 건설공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로 비유되었다.

박 대통령이 근로자들에게는 비정하였다거나 무관심하였다는 소위 ‘개발독재’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밝혀둔다.

박정희 대통령 참배운동 봉사단

배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