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자들은 대부분 술에 만취하면 길바닥에 쓰러져 술이 다 깰 때까지 그 자리에서 자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럴 때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

한 젊은 남자는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어 있었다
옆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남자는 3시간 전쯤에 죽었다고 한다
군용차와 정부 고위관리들이 탄 고급 승용차들이 그 옆을 지나갔지만 어느 자동차 하나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냥 내빼버렸다
그 젊은이가 어떻게 차에 치였는지 주변에 있던 사람 누구도 증언하려고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귀찮은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몸에 남아있는 체온과 출혈상태 그리고 시신경의 경직도를 보면 그는 사고를 당하고 두시간 정도는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제때 손을 썼더라면 살려 낼 수도 있었을 터인데 아무도 돌보지 않아 그냥 죽은 것이다.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말이다

평양, 2000년1월8일

북한에서 맞은 새해 첫 일주일이었다. 새 출발을 하겠다는 분위기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천년. 그것은 바로 북한을 위해서 북한 때문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남쪽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해주는 어디를 보나 눈 속에 깊이 빠져 있다
시가지 전체가 하얀 솜으로 싸여 있는 모습이다.

딱 한군데 거대한 납땜용 인두로 녹인 듯 눈이 없는 곳이 있다. 문자 그대로 눈 한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김일성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이다.
북한에 그렇게 거대한 납땜용 인두가 있을리 없다 있다 해도 에너지가 없으니 사용할 수도 없지 않은가.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한가지 사람·인력이다. 얼핏 보아도 인력은 넘쳐나는 것 같다
매 시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볏짚으로 만든 짧은 비를 들고 동상 앞을 쓸고 또 쓴다.
자연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까? 그래서 김일성 동상 앞에는 겨울이 없다.
눈 쓸기에 동원되는 사람들은 대개 아주 어리지 않으면 아주 늙은 여자들과 학생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눈을 쓸어내는 바람에 김일성 동상 앞에는 겨울이 없는 것이다.
자연까지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소망
그러나 거대한 청동제 조각물을 세워놓고 그 앞 광장을 무균위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자연지배의 의지일까?

감옥의 나라, 북한으로부터의 편지
국제사회가 북한정권에 압박 가해야 북한주민 인권 개선된다

나는 북한을 안다. 나는 북한에 살면서 그곳의 지옥과 광기를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나는 독일의 의료지원 기구인 '캅 아나무어'소속의 의사로서 1999년 7월 북한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0년 12월 30일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추방되었다.
김정일 정권의 인권남용과 북한에 원조한 식량을 북한 정권이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한 것이 추방의 이유였다.

북한의 기아는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전복만이 북한 주민들의 기아에 중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는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일 정권의 노예인 농민들은 극한의 빈곤 속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거부되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권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고 구속 수감된다. 이곳에서는 강제노동이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내가 북한에서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북한생활을 시작한 초기 나는 이글거리는 쇳물에 중화상을 입은 한 노동자를 치료해 달라는 호출을 받았다.
나는 자발적으로 내 피부를 떼어 그에게 이식해주기로 결심했다.
주머니 칼로 피부를 떼 내어 환자에게 이식했다.
그 같은 행동으로 나는 이곳의 유일한 언론매체인 국영언론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는 우정의 메달을 받았다.
이같은 영예를 얻기는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다

나는 또 'VIP'패스와 운전면허증을 받아 외국인과 일반 북한주민들은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 여행할 수 있는 허가도 얻었다.
나는 남몰래 환자들과 그들이 누워있는 낡아빠진 병원 시설들을 사진에 담았다.
평양 북쪽 10마일 지점에 위치한 평성의 어린이 병원이 나에게 주어진 일자리였지만 나는 다른 지방의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찾아간 병원에서 마다 내가 목도한 것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믿기 힘든 결핍과 빈곤이었다.
병원에는 붕대도 없고 수술용 메스도 없고 항생제도 없고 수술시설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고장난 침대와 그 위에서 누워 죽만 기다리는 어린이들 뿐이었다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발육을 멈추고 말을 잃고 정서적으로 고갈된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나이에 비해 너무 왜소했고, 두눈은 움푹 꺼져있고 얼굴의 피부 또한 정산이 아니었다.
그들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어린이들처럼 푸른색과 흰색 줄이 쳐진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너무 심각한 영양실조로 저항력을 잃어 감기만 걸려도 치명적이었다.

북한에는 웬 고아가 그리도 많은 것일까?
이 어린이들의 부모는 모두 어디 있는 것일까?
북한 주민들의 가족생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압제적인 권력기구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있기만 하면 코일을 풀어 목을 조인다.
감시하고 미행하고 전화를 도청하고 우편물을 뜯어보고 그로 인한 질식은 그야말로 완벽한 상황이다.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심신증 질병을 앓고 있고 강제 군사훈련과 쉴 새 없는 퍼레이드 참가와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애국 집회 참석으로 인해 완전 탈진상태다.
그들은 일에 지쳐있고 극도로 쇠약해져 있고 한계에 이르러 있다.
임상 우울증이 극심하고 일에 대한 의욕상실, 희망의 부재 그리고 각종 억압으로 알콜 중독이 일상화되어 있다.
환자들의 눈에서 내가 본 것은 오직 권태와 피로 뿐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었다.

언젠가 나는 군인인 내 운전기사의 사고로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국은 내가 그를 면회하고 싶다고 하자 아주 난처해했지만 나는 이 같은 반대를 극복하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붕대와 항생제를 갖고 갔다.
그때 나를 당혹케 한 것은 내가 그동안 방문했던 병원과는 달리 이 병원은 독일의 그 어떤 병원만큼이나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그네틱 공명 이메이징을 비롯해 초음파기계 전기 심전도 엑스레이 촬영 등 최신 의료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북한에는 두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는 고위 군 인사들과 엘리트 지도층을 위한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주민들을 위한 살아있는 지옥이다.
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식량을 원조하고 의료지원을 했지만, 나는 내가 근무했던 그 어떤 병원에서도 식량과 의료 문제가 개선된 것을 보지 못했다.

'개혁'운운 하지만 가족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체제비판의 발언을 하면 가족 전체가 감옥에 가는, 그런 체재개혁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이들의 캠프는 외국인들에게는 꼭꼭 문을 닫아걸고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집단적 굶주림이 가뭄과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의 결과라고 믿었던 나의 순진함은 많은 원조식량이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완전히 사라졌다.
'캅 아나무어'팀이 북한에 들어가기 전 이미 옥스팜이니 케오와 같은 다른 지원 기관들은 원조식량을 주민들에게 직접 배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수하고 말았다.
이들은 식량배분 작업을 북한 당국에 넘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식량배분 임무가 완전히 북한 당국으로 넘어가면서 모니터도 불가능해졌다.
그 누구도 원조식량이 실제 어디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굶주리는 주민들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의사인 나는 그들의 잔인한 체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는 공포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의 그같은 진단이 맞는 것이라면 나는 그에 대해 올바른 처벙을 내려야 하고 또 그들 체제의 억압에 맞서 항거의 목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국제사회는 특히 인도주의 단체들은 북한 내 강제소용소 그 속 어두운 세계에의 접근을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현 북한 체제의 수혜자들은 공산당원들과 고위 군 간부들 뿐이다.
이들은 평양에서 안락한 생활 스타일을 즐기고 있다.
이상야릇한 식당과 나이트 클럽을 출입하면서 음탕하고 추잡한 생황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은 또 외교관 전용 상점을 드나들면서 아르헨티나 産 쇠고기 같은 진미거리를 사다가 인도주의 지원기구들로부터 빼낸 식량과 함께 즐긴다.
시골에서는 원래 자신들에게 배분하라고 원조한 식량을 빼앗긴 주민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초근목피를 찾아 헤멘다.
평양의 김정일 정권 앞에서 전세계가 바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독일인으로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치 치하에서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만 지킨 죄과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죽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에 대해 그랬듯이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을 신격화하는 북한의 이 사탄과도 같은 정권을 폭로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북한 경제 전체가 군비증강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북한의 일반주민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다.
이를 받아야할 사람들에게 원조가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이다.
외국의 비정부기구들 언론인들 그리고 외교관들은 자유롭게 아무 때고 사전통보 없이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원조물품이 제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것만이 주민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그들은 모두 세뇌가 되어 있어 그들의 통치자들을 전복시키기에는 너무나 겁이 많다.
그것이 의학적인 나의 진단이다.
오직 바깥세계만이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으며 또 바깥세계만이 이 타락한 민족을 개혁할 수 있다.

노베르트 폴러첸의 --'미친 곳에서 쓴 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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