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도 몇 방 안 쏘고 얻은 전리품, 한반도의 북단에 발을 딛은 소련은 자신의 지배 지역(38도선 이북)에서 시간을 조금도 허비하지 않았다.
붉은 군대 감시하 <人民>체제의 설치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하고 9월에 접어들어서는 김일성을 반대하는 토착 공산당 간부(玄畯極 등)수명이 암살되었다.

평양에서도 서울에서도 민족주의자들은 당연하고도 남을 자주독립의 기대가 좌절된다고 보고 美 蘇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였으나, 평양의 인민체제는 표변하여 신탁통치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이에 반대한 민족주의 지도자 曺晩植이 1946년 1월 5일 체포 감금되고 그 후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평양에는 조선인민위원회가 설치되고 토지개혁이 시작된다.
이것은 유럽 특히 파리의 좌익 인텔리들에게는 크게 환영을 받은 농지개혁이었지만, 실제로는 농업집단화로 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였다.
1946년 봄 토지의 무상몰수가 법제화되고 이어 8월에는 모든 산업, 은행, 운수기관이 국유화되었다.

소유를 박탈당한 地主(5정보 이상을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몰수대상이 된)들은 남으로의 도주로를 찾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예감한 중소 상공인들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남북간의 이동이 서서히 어려워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대이동 이래 2천년 만에 극동에서 벌어지는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48년에는 토지개혁 직후에 발행된 농지소유권리증이 회수된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반환되지 않았다.
언성 높여 반환을 요구하는 자에 대해서는 처음 토지분배는 착오였다는 답이 돌아오거나 혹은 조선인민의 배반죄를 씌워 함구시켰다.

사세가 이러함에도 공산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프랑스의 시사지 '클로드 블루디' 같은 잡지는 1950년 7월 6일호 기사에서 북한의 토지개혁 효과에 낙관을 예상하고 6.25전쟁 발발시에는 그것을 남북의 체제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북한은 현재로서는 잘 알려진 형태의 人民共和國이다.
설사 북한정부가 민주주의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았다 하더라도....중략....농지개혁과 공업화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전체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투쟁의 기초가 거기에 있다.>고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이런 선전효과로 해서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寬大하게 보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박수갈채를 받은 <人民民主主義> 북한은 전속력으로 형성되어 갔다.
후견인 소련은 북한에 강력한 군사조직을 구축하고 군비를 갖춘 뒤 마음먹고 붉은군대를 철수시킨 다음, 이번에는 미국의 차례라고 북한을 부추겼다.
미국은 남한 내에 확고한 국가도 군대도 구축하지 못한 채 1949년 6월 고문단 수명만 남긴 채 전면 철수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는 소련으로 보나 북한지도자로 보나 자유선거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북한 사회형태의 선택은 이미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한반도 전체의 선거형태에 대하여 즉, 선거활동이 허가된 개인 및 정당에 대하여 남한 당국자들과의 합의를 일절 거부했다.
1947년 유엔은 총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사절단을 북한에 들여보내려고 하였으나 클렘린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 결과, 1948년 당연한 추이로써 북위 38도선이라는 想像의 線 양측에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쪽은 우리뿐이라고 주장하는 두개의 적대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찾아온 세계질서 재편과정의 기초가 되는 유엔헌장상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는 남측의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 의한 6.25전쟁 도발이었다.
유엔헌장 정신에 따라 북한을 불법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유엔이 이를 응징한데서 보면 된다.

각기 진영에서는 무력에 의한 결착을 바라는 자가 있었다.
1994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한국의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준 소련시대의 기록이 증명하듯이, 북한의 김일성에 따르면 남한인민은 북한군에 의해 해방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의 습성대로 조건이 성숙될 때를 기다렸다.
따라서 毛澤東은 북경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인도해 줄 군수물자의 수송수단이 확보되어 비밀리에 보급을 받은 남한 내 게릴라의 전력이 보강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1950년 초, 스탈린은 드디어 고 사인go-sign을 보내고 군사고문단, 전략가들을 북한의 김일성에게 파견한다.
김일성은 모택동으로부터도 어떻든 중공의 참전 약속을 받아내고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은 예고 없이 남쪽을 향해 포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파리의 외곽 상 주르망 Saint. Germain은 잘 알면서도 서울이나 개성 같은 한국 지리에는 맹문이었던 쟝 폴 사르트르 같은 프랑스 지성들조차 "전혀 그 반대다. 북한군이 덫에 걸려들었다"고 한국군의 북침론을 주장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필자를 비롯한 당시 학생들은 전쟁이 멎고 50년대 중반 서양의 실존주의 사상이 밀려들 때, 샤르트르, 야스퍼스, 까뮈 같은 존재를 알았지만, 샤르트르가 그토록 완고한 공산주의자라고는 보지 않았다.
아마도 요새 젊은이들이 브루스 커밍스 같은 수정론자들을 보는 얕은 시각이었을지 모른다.

- 후속 -

華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