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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워쳐(18)- 金正日 專橫의 결과는?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06년 11월 04일 PM 04:30:07

傾國事業에 3년간 47억불 소진, 나라 망치고.....

金正日이 제도상으로 유일 후계자로 지위를 확보한 것은 1980년 10월의 제6차 당 대회였다.
당청치국 상무위원(제4위) 서기국원(제2위) 군사위원(제3위)의 3직을 겸무하고 김일성에 이은 실질적 제2인자의 지위를 굳혔다.
이때부터 코드네임이 <우리당> <영광있는 당>으로 된다.
사실상 수령으로부터 거의 전권을 위임 받은 형태이다.

이미 1973년에 김정일은 당을 초월하는 조직으로서의 3대혁명소조를 조직, 장악하고 6개년계획을 앞당겨 달성하는 <속도전>을 발동했다.
결국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고 만다.

무소불위 권력의 맛을 본 그는 마침내 큰 일을 저지른다.
1976년 8월 18일 희대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다.
판문점 남측 경비구역 내의 시야장애물 미루나무 가지를 제거하려던 유엔군 장교 2명을 도끼와 쇠 지렛대로 찍어 주이고 9명의 한국인과 미국인에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젊은 미군장교 2명이 무참히 살해된 이 사건으로 유엔군 측은 전쟁 불사를 선언했으나, 金日成의 즉각 유감 표명으로 사태는 수습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80년대 速度創造 運動>으로 전 사회를 속도전으로 내몰아 개선문 주체사상탑 인민대학습당 등 기념비적 대건축물 축조에 주민 총동원령을 내린다.

그리고 당 중앙위 총회를 통해, 81년에는 4대 自然改造 課題를, 82년에는 비철금속 150만 톤 과제, 83년에는 화학생산 목표와 직물 15억 미터 과제의 조기 달성에 각각 <전국, 전당, 전 인민>의 노력을 동원하는 전국사업을 벌인다.

이 같은 광적 과제들로 말미암아 제2차 7개년계획(1978-84)이 혼란에 빠지고, 형식적 완성 후 2년간이나 무계획의 공백기간이 발생하였다.

1987년부터 제3차 7개년계획에 들어가지만, 이때도 3년간의 <首都大建設>을 호령해서 계획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계획뿐만 아니라 장기간 속도전 집중방식에 의해 전국의 공장설비와 전력,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노후화와 산림, 하천, 농지의 국토 황폐화가 진행되어 식량난이 발생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여기서 붕괴의 결정타를 안긴 1989년 世界靑年學生祝典에 대해 알아보자.
1981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88올림픽대회의 서울 개최가 결정되었다.
북한으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 세계적 대 이벤트가 서울에서 성공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북한측은 처음에는 반대, 다음은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제안하고, 85년부터는 남북공동개최를 주장하면서 선수촌이나 실내경기장 등의 건설에도 착수함으로써 공동개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올림픽의 도시주최 원칙에 위배되므로 공동개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공산권의 국제행사 중 하나인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초치, 제13회 제전을 89년 여름 평양에서 개최하기에 이른다.

1986년부터 올림픽시설 건설을 청년학생축전용의 <수도 대건설>로 전환하는 김정일 대명령이 내려져 평양시내의 토목건설공사가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시설은 주로 평양시 서부 만경대구역에 집중되지만, 여기에 40층고의 광복거리 대표단촌(후에 2만5천 세대의 뉴타운화), 청춘거리 스포츠촌(축구 배드민턴, 역도, 수영, 배구, 핸드볼, 농구, 탁구, 경기장 등과 경경기관 중경기관), 같은 지역에 30층고의 520실 청년호텔, 서산호텔, 양강호텔 등 3개의 국제호텔을 신설했다.

도로의 입체교차로와 지하상가도 함께 겅설되었다.
시의 남쪽에 떨어진 양각도에는 3만석의 양각도축구경기장도 새로 들어섰다.
평양 북쪽에는 順安 국제공항도 건설 정비되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은 평양시 동쪽 끝의 능라도에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메이데이 스타디움일 것이다.
무려 15만석을 가진 이 경기장은 너무 넓어 경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김정일이 밀어부친 것이다.

공사 중 현장을 본 외국인들이 필드에 많은 구덩이가 파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어보니 <밤낮 없이 일하는 청년들이 잠자는 구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하나 더 추가할 이야기는 축전 개최 전해 88년에 돌연 김정일이 <세계최고층 호텔을 1년 내에 지으라>는 명령으로 착공한 악명 높은 柳京호텔이다.
3천실의 괴이한 모습을 가진 거대 호텔이 돌관작업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도중에 외국에서 105층 높이의 고층 호텔이 건설된다는 뉴스에 다짜고짜 114층으로 더 높이라고 명령한 촌극도 있었다.

제아무리 뜻대로 속도전을 편다 해도 기한 내 완공은 어렵고 결국 105층 높이의 골조만 세우는데 그쳤다.
하지만 <그 위용을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호언했다.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검게 때 묻은 골조만 선채 傾國象徵物로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돌풍처럼 몰아친 이 3년간의 <수도대건설> 중 상시 15만 명이라는 청장년이 도별․기관별 돌격대를 편성해서 동원되고, 전국으로부터 모은 자재 기기 식량을 투입해서 결과적으로 47억 달러의 막대한 돈을 뿌려 260여 개의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기념비적 건조물을 만들어내고 북한 경제는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지금 김정일은 원자폭탄 만드는데 수십억 달러를 뿌리고 있다.
 
< 華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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